
한 나라 안에서는 수많은 분쟁들이 일어납니다. 돈에 얽힌 싸움에서부터 여야 정당 간 다툼까지 끝도 없는 대립들을 보다 보면 정신마저 피곤해지는데요. 세상에 찌든 어른들이 나라를 다스리기 때문에 이런 걸까요. 만약 동심으로 순수한 아이들이 나라를 꾸려간다면 어떨까요.
동화 속 이야기 같겠지만 정말로 어린이와 청소년이 다스렸던 나라가 있습니다. 그들 스스로 만든 규칙과 의회로 나라를 다스리고, 민주적인 선거로 대표자를 선출하는 유토피아. 1956년부터 40여 년간 스페인에 존재했던 어린이 공화국 ‘벤포스타(Benposta)’입니다.


이 공화국은 1956년 헤수스 세사르 실바 멘데스(Jesús César Silva Méndez) 신부가 열다섯 명의 아이들과 함께 스페인 북서부의 한 도시 오렌세(Ourense)에 만든 작은 어린이 공동체에서 시작됐는데요. 3년간의 내전과 제2차 세계대전을 겪은 후에도 독재 정치로 고통받고 있던 스페인의 상황 때문일까요. 점점 더 많은 아이들이 이곳으로 모여들면서 아이들 스스로 자급자족할 수 있을 정도로 커졌습니다.
학교는 물론, 과수원과 빵집, 인쇄소 등 꼭 필요한 시설들도 벤포스타 안에 세워졌는데요. 아이들은 벤포스타 안에서 사용되는 화폐를 이용해 물건을 사고팔고, 회의로 나라의 규칙을 정하고, 시장 선거에 출마하거나 투표로 시장을 선출하면서 스스로 자립했습니다.


그렇게 1970년대에는 2천여 명이 함께 살아갈 정도로 번성했던 아이들의 유토피아는 2003년 이후 사라졌습니다. 공화국을 만든 헤수스 세사르 실바 멘데스 신부가 그 유토피아를 끝냈는데요. 아이들에게 모든 것을 맡긴다고 했던 그가 수익금과 기부금을 횡령한 겁니다. 게다가 공화국이 사람들의 관심에서 멀어지고 재정이 악화되자 아이들을 방치했다는 사실까지 밝혀지면서 언론과 정부에서 문제를 제기했는데요. 이에 마음을 다친 수많은 아이들이 이곳을 떠나면서 한때 전 세계에 알려졌던 아이들의 유토피아는 역사 속으로 사라졌습니다.
한 어른의 탐욕이 망쳐버린 선량한 아이들의 나라, 벤포스타. 어쩌면 아이들 손에 온전히 맡겼다면 벤포스타는 지금도 유토피아로 남아 있지 않을까요.